다는 아니더라도 영화 속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대부분이 극적 효과를 위해 어느정도 과장되고 미화되어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우리도 영화 속 사람들의 삶같은 이야기를 얼마든지 만들며 살아 갈 수 있다. 단지 그런 삶을 선택하지 않을 뿐이다. 왜? 한 순간의 영웅놀이 혹은 로맨스로, 나중에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는 것을 자신도 모르게 계산하며 행동하기 때문이다.
감정이입이 뭔지를 처음으로 알게 해 준 영화, Before Sunrise.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 속 두 사람, 제시와 셀린 (Jesse & Celine)의 말과 표정 그리고 보이지 않는 감정이 다 그대로 가슴에 와 닿았다. 그 영화를 보기 한 달여 전, 셀린의 자리에 내가 있었다. 하지만 난 셀린과는 다른 선택을 했다. 칸 (Cannes)에서 로마 (Rome)로 오는 기차 안에서의 한 만남. 그와 나는 로마 기차역 근처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다, 그는 다음 기차를 타고 떠났고, 나는 로마에 남았다.
그는 휴가차 고향집에 가는 길이었고, 이태리의 아름다움이 뭔지 내게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난 그의 눈에서 간절함을 보았고, 나역시 망설임이 없진 않았지만 뒷감당을 할 자신이 없었기에, 난 모든 걸 모른 채 하며 기차역을 혼자 걸어 나왔다. 후에 어떤 아쉬움을 남길지 모르며서 말이다. 그리고 그 일이 있은 뒤 8년이 되어가던 해, 난 또 한번의 영화 시나리오를 만들 기회를 가졌다. 이번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8년 전의 아쉬움 때문만이 아니라, 그동안 삶을 대하는 내 태도에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Before Sunrise’ & ‘Before Sunset’과 같이 이어지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난 충분히 한 편의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이야기를 엮었다. 그리고 끝을 보여주지 않는 해피엔딩 (happy ending) 영화의 뒷이야기처럼, 지금은 매일 일일 드라마, 때로는 일일 싯콤 (situation comedy) 시나리오를 써가고 있다.
왜 자신의 삶은 재미없고 지루하냐고? 그건 선택의 순간에 내렸던 결정들을 뒤돌아 보면 바로 답이 나온다. 영화같은 삶이라는 것, 자신의 행동에 대한 대가를 치를 각오를 하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래서 내가 지금 그 대가를 치르고 있냐고 묻는다면... 이건 한마디로 답하기 어렵다. 그건 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니까. 어제는 비가 와서 좋고, 오늘은 해가 쨍쨍해서 좋고, 그리고 내일은 어떤 일이 일어날지 기대감이 있어서 좋고,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대가가 아니라 혜택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심리학적으로, 우울증 (depression)은 생리학적 질병으로 말하자면 감기와 같은 것이라고 한다. 우울증은 예고없이, 언제든지 누구에게나 찾아들 수 있다는 얘기다.
우울증이 찾아오는 경로는 다양하다. 하지만 삶이 자신의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와는 반대로 삶에 끌려다니는 사람에 비해 우울증과 만날 기회가 적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