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28일 금요일
2011년 4월 21일 목요일
추억이 되어가는 책방, BORDERS
책방. 요즘은 서점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고 있지만, 책방이라는 말이 풍기는 몇 가지 어감 때문에 서점보다는 이 말을 즐겨 쓰는 편이다. ○○서점 혹은 ○○문고라는 이름으로 책 외에 다양한 문화상품도 팔기 시작하면서, 작은 규모로 책을 팔던 책방이 사라지고, 자연스럽게 책방이라는 말도 사람들 입에 덜 오르내리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이 서점이라는 말도 다른 말에 자리를 내어 줄 날이 멀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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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마다 붙어있는 '폐업세일' |
한국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지금 내가 사는 동네(Bay Area)에서는, 역설적이게도, 길모퉁이 책방을 잡아먹고 대형 몰(mall)에 들어섰던 기업형 서점 역시 그 길모퉁이 책방의 전철을 밟으며 사라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You’ve Got Mail’이라는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이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으리라 본다. 얼마전부터 기업형 서점 중 하나인 ‘BORDERS’ 가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했다. 내가 자주 들락거리던 BORDERS도 지금 폐업세일 중에 있다. 온라인 책방과 e-book의 활성화에, 미국의 어려운 경제적 상황까지 보태지면서 몇 년 전부터 예고되었던 일이기는 하지만, ‘store closing’ 간판 아래 뭐든 싸게 판다는 광고문구와 함께 쌓여있는 책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10여 년 전 사건 하나가 겹치면서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휴대전화나 호출기 등의 통신매체가 캠퍼스문화와는 거리감이 있던 시절, 학교 앞 책방은 학생들의 연락방 역할을 했다. 한번쯤, 책방에 꽂아진 메모를 확인해 보았거나, 책방이 마련해준 자리에 앉아 책을 보며 시간을 보내 봤던 사람이라면, 그 책방이 재정난으로 사라질 위기에 있다는 소식에 맘이 편치 않았을 것이다. 몇몇 사람들이 뜻을 모아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책방을 지켜보고자 했으나, 결국엔 그 책방마저 다른 업종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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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attle's Best Coffee 파라솔과 의자들이 있던 자리 |
BORDERS는, 옛날 책방과는 다르지만, 그동안 어떤 이유로든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편안한 휴식 공간으로 존재해 왔다. 나와 남편도 이곳을 내집 서재처럼 편안하게 들락거렸다. 사실을 말하자면, 책을 사러가는 날보다는, 사고 싶은 책을 미리 훑어보거나, BORDERS가 운영하는 커피점 (Seattle’s Best Coffee) 파라솔 아래서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 날이 더 많았다. 이런 날이 곧 올 줄 알면서도, 급하지 않은 이상 값이 싸다는 이유로 온라인 책방을 더 많이 이용했다. 평범한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게 자연스러운 거라고 애써 변명해보지만, 폐업정리 문구에 죄책감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세상은, 다는 아니지만, 주로 인간의 이기심을 바탕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자본의 힘을 자랑했던 대형서점이 그 자본의 논리에 따라 사라진다고 안타까워 할 일은 아니다. 오프라인의 책방문화가 사라지는 것이 섭섭하긴 하지만, 사실 나도 이보다는 내가 즐겨 찾던 놀이방을 빼앗긴 서운함을 더 강하게 느끼고 있다. 특히 Seattle’s Best Coffee가 제공하던 야외 공간은 어디에서나 쉽게 향유할 수 없는 곳이었으니 말이다. 선반과 선반 사이를 돌면서 책을 고르고, 책장을 넘겨 가며 책읽는 재미를 맛보기 위해선, 좀더 투자했어야 했다. 현실은 무임승차를 오래 봐주지 않는다는 걸 모른 척 했던 대가로 더 많은 걸 치루게 되겠지.
*덧붙이는 이야기:
옛 생각도 나고 정확한 정보도 얻을 겸 이곳저곳 기웃거려 보니, 그 책방이 밀려난 뒤, 같은 이름의 헌책방이 들어섰다가 다시 재정난으로 문들 닫았다고 하는데, 이곳에서는 정확한 사실을 알 길이 없으니...
*덧붙이는 이야기:
옛 생각도 나고 정확한 정보도 얻을 겸 이곳저곳 기웃거려 보니, 그 책방이 밀려난 뒤, 같은 이름의 헌책방이 들어섰다가 다시 재정난으로 문들 닫았다고 하는데, 이곳에서는 정확한 사실을 알 길이 없으니...
2011년 1월 21일 금요일
끝나지 않을 Capitola 이야기
한 10여년 전 일로 기억된다. 소위 말하는 IMF 구제금융으로 한국사회 전체가 몸살을 앓으면서, 이민 붐이 일었던 때가 있었다. 그때 캐나다로 이민을 떠난 누군가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었다. ‘여행객으로 와서 잠시 머무를 때에는 그렇게 아름답게 보이던 벤쿠버 (Vancouver)의 풍경과 사람 사는 모습이, 막상 가서 먹고 사는 걸 걱정하다 보니, 이젠 더이상 아름답게 보이지도 않고, 풍경같은 것은 아예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고. 오래전 스쳐지나가며 들은 말이지만, 그 말을 하는 순간에도 현실의 답답함이 묻어나던 그 사람의 말과 표정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 여행은, 먹고사는 일상적인 것들로부터 벗어나, 나와는 아무 상관 없다는 듯, 여행지의 사람들과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한발짝 물러나 볼 수 있는 방관자의 눈을 준다. 6년 전 여행길에 잠시 들렸던 Capitola. 이곳에서 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보지 못한 것일까?
2004년 여름, 목적하는 바를 이루고자 했던 3년간의 칩거에 가까웠던 생활을 마무리하고, 아무 생각없이 짐을 꾸려 떠났다. 4일간의 외출. 하지만 내게 4일간의 외출은 목마른 자에게 주는 딱 한 방울의 물과도 같이 더 심한 갈증을 느끼게 했다. 게다가 여행에서 돌아온 서울은 말그대로 살인적 더위로 녹아나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떠난 여행. 그 여행에서 난 Capitola라는 도시를 만났다.
내가 Capitola를 처음 찾은 건, 그 해 두 번째 떠난 여행을 시작한 둘쨋날, 7월의 한여름 태양이 기운을 잃어가던 늦은 오후였다. 막 바다에서 해수욕을 하고 나온 듯한 사람들 몇 몇이 주차장으로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 나와 동행한 한 사람, 우리 둘은 그들이 걸어 들어온 거리로 나갔다. 내가 흔히 알고 있던 한여름 바닷가 도시와는 달리 차분하게 정돈된 마을이 눈에 들어 왔다. 평일의 늦은 오후여서 그랬을까? 조용하다 못해 쓸쓸한 기운이 발길에 묻어 올라 왔다. 길 양 옆으로 제법 깔끔하게 차려 놓은 작은 갤러리가 군데군데 보이는 것 외에, 바닷가로 이어지는 길은 이 근처 작은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모래사장으로 이어지는 길 모퉁이에 서있는 한 옷가게를 돌아 서자, 생각지도 못한 풍경이 펼쳐졌다. 태양이 검붉게 물들어 가는 바다를 배경으로 재즈가 흐르고, 사람들은 바람 속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매해 6월 말부터 9월 초까지 매주 수요일 해질 무렵이면, 이곳을 찾은 사람들에게 그들만의 이야기를 엮어 갈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된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내가 우연히 찾아간 날이, 마침 그 중의 하루, Jazz Concert가 있던 날이었고, 덕분에 나는 재즈가 있어 더욱 낭만적인 해질 녘 한여름 바닷가에서, 여행객의 정취를 맘껏 맛 볼 수 있었다. 나와 동행인은 사람들 속에서 나와, 그들을 배경으로 바다로 향해 나 있는 나무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우린 그렇게 앉아서, 한 여름밤 풍경의 한 자리를 채웠다.
그날 나와 동행한 사람은, 내 아는 이의 부탁을 받고, 호의로 나를 그곳까지 안내해 주러 온 것이었다. 서로 얼굴을 본지 두 번째 되는 날이기도 했고, 그날 분위기가 주는 자유로움 때문이었는지, 그렇게 한참을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낯섬이 자연스레 털려나가고 있었다. 다른 문화에서 오랜 시간 살아왔지만, 내 오랜 친구들보다 나와 비슷한 시각에서 사물과 사람을 보고, 이해하고 있다는 것에 난 적잖게 놀랐다. 해가 완전히 물속에 잠겨버리자, 바다도 하늘도 제 색깔을 잃고 하나로 이어지고 있었다. 여름이라고 하기에 무색할 정도로 차가운 바닷바람 속에 한참을 있다 보니, 찬기가 몸속까지 스며드는 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날의 마지막 노래를 들으면서, 몸 녹일 곳을 찾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파라솔이 아직 접혀지지 않은 deck 위에서, 스낵과 음료로 그날의 축제를 마무리하고 있는 사람들을 지나, 우리는 내 위가 감당할 수 있는 음식이 있을 것 같아 보이는 한 Italian café 로 들어갔다. 사람들도 적당히 있고, 바다로 나 있는 창으로 점점 더 짙어져 가는 밤바다를 보며 오늘을 정리하면서 저녁을 먹기에 그런 대로 괜찮아 보였다. 두 번째 보는 사람들끼리 뭐 그리 할 얘기가 많았는지, 이야기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Capitola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난 그 다음해 7월, 다시 Capitola를 찾았다. 그날도 모래사장에선 concert가 있었고, 바다는 여전히 낮동안 달구어져 있던 태양의 열기를 삭히며 검붉게 변해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제 각기 음악이며 바다며 바람이며, 그날의 모든 누릴 수 있는 혜택을 맘껏 즐기고 있었다. 나는 눈과 귀와 내가 가진 모든 감각을 있는 대로 다 열어 놓은 채, 지난 여름의 흔적을 쫓아 보았다. 여행객으로 우연히 들렸던 Capitola. 하지만 더 이상 낯 선 여행지가 아닌 이 도시의 여름 밤이 내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 것인지 알고 싶었다. 이 날도 그 전 해 동행했던 사람이 함께 해 주었다. 하지만 그는 단순한 동행인으로 나를 따라나선 건 아니었다. 그와 나는, 지난 해 우리가 만들어냈던 이야기의 흔적을 찾아 하나하나 따라가 보았다. 같은 모래사장을 걸어, 같은 나무의자에 앉아, 같은 바다를 바라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같은 café의 같은 자리에 앉아 먹은 저녁. 음악이 바뀌고 café의 음식 맛이 달라진 것만 빼곤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그리고 우린 또 그 다음 해 7월에도 Capitola를 찾았다. 이번엔 많은 것이 달랐다. 그날은 Rock이 있었고, 날씨마저 Rock에 맞게 뜨거웠다. 그날 Capitola의 밤은 내 기억에 있던 느낌과는 사뭇 다르게 다가왔다. Café도 다른 곳을 찾았다. 저녁을 먹고 다시 바다로 나가 보았다. 음악도 없고, 춤추는 사람도 없는 Capitola의 밤바다는 조용했다. 남편과 나는 찬 기운을 이기지 못할 때까지 하늘과 하나로 검게 이어진 바다를 바라보았다.
지난 두 해 동안, 아쉽게도 Capitola를 찾지 못했다. 3년 전, 여전히 여행객의 기분으로 살아가던 때여서 그랬을까? 아주 미세한 부분의 느낌은 달랐지만, 아직도 Capitola는 내게 낭만의 도시로 남아 있다. 언젠가 내가 더이상 여행객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는 날이 오면, 그 낭만은 퇴색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올해 7월에도, 내년 그리고 내 후년에도 그곳에 가 볼 것이다. Capitola 여름밤이 전설이 될 때가지 나의 방문은 계속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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