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25일 금요일

로마네스코 브로콜리 이야기 1

 주말 아침, 가끔은 눈꼽을 매단 채 잠옷바람으로 뭉그적거리며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 마음을 훅 날려버리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장바구니를 들고 남편과 farmers market에 가는 일이다. 각 장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적어도 정오까지는 장이 열려있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너무 늦지 않게 가야 원하는 야채를 구할 수 있기에 늑장을 부리지 않는 게 좋다. 특히 겨울엔 야채의 종류도 줄고, 나와 있는 야채의 양도 적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지지난 일요일 장에서, 남편과 내가 원하는 lettuce (한국의 채소로 치면 상추와 비슷하며, 요즘은 하이브리드로 생김새는 물론 맛도 다양하다. 요즘 우리가 자주 가는 가게에는 butterhead lettuce 종류가 나온다.)를 구하지 못한 일도 있고 해서, 지난 일요일엔 조금 일찍 집을 나섰다. 하지만 우리가 좋아하는 가게의 lettuce는 이미 동이 나고 없었다. 덩그렇게 빈 자리를 보며 느끼는, 그 서운함과 실망감이란…… 하지만 그날은 서운함을 조금은 덜 수 있었다. 아무 곳, 아무 때나 얼굴을 내보이지 않는, 귀하고도 귀한 로마네스코 브로콜리 (Romanesco broccoli)가 환하게 나를 반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로마네스코 브로콜리는 집 주변 가게에서는 구경조차 할 수 없음은 물론, 1년 내내 나오는 채소가 아니기에 farmers markets에서도 계절이 아니면 구하기 쉽지 않다. 이런 이유로 로마네스코 브로콜리를 장에서 보는 날은, 운수대통한 날이다. 지난 가을시즌에도 겨우 서너 번 구경한 것이 다였다. 지난 일요일 장에 고개를 내민 로마네스코 브로콜리는, 어디 하나 버릴 데가 없이 너무도 깨끗하고 신선해서 요리를 하기에 아까울 정도였다. 이 브로콜리는 원래 상태가 좋으면, 종이 (paper towel)로 잘 싸서 비닐 백에 넣어 냉장보관 하면, 적어도 2주일 동안은 그 싱싱함을 그대로 유지하기에, 간난아기를 다루듯이 조심스럽게 두 송이를 집어들고 왔다.

로마네스코 브로콜리는 집 주변 가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브로콜리 대신 이용할 수도 있지만, 모양에서 느껴지듯이 씹히는 감이나 맛이 달라서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익혀도 아삭한 질감이 많이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 특성을 살리는 요리에 쓰면 더욱 좋다. 내가 할 수 있는 요리 중에서 로마네스코의 장점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것은 파스타 (cream sauce)에 곁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일요일엔 좀 색다른 시도를 해 보았다.

지난 가을시즌에 시도해 보고 싶었는데, 미루다 시즌을 놓쳐 못해 본 ‘로마네스코 브로콜리 초간장 절임’을 만들어 보았다. 사실 지난 봄, 일반 브로콜리로 ‘초간장 절임’을 담그기도 한다는 말을 듣고 시도해 본 경험이 있다. 하지만 간장과 식초 그리고 설탕의 비율을 잘 못 맞춘 탓인지, 못먹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맛이 났다. 남편에게 맛있다고 세뇌를 시켜가면서 여기저기에 슬쩍슬쩍 곁들여 내 놓아 봤지만, 남편은 고사하고 내 자신도 설득시키지 못했다. 이런 경험이 있었기에 귀한 로마네스코 브로콜리를 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망설임이 없지는 않았지만, 지난 여름에 만들어 본 ‘양파 초간장 절임’은 바닥을 볼 정도로 잘 먹었기에 과감히 시도해 보았다.

초간장에 절인지 3일째 되는 오늘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냉장고에서 꺼내 본 결과…… 젓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두어개 주워 올려보니, 절임을 한 다음 날까지만 해도 생생하게 떠있던 브로콜리는 간장물에 까맣게 졸아 있었다. 순간, '좀 짜겠군'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좀 짰다. 양파보다 수분을 더 함유하고 있을 것 같아 간장을 양파절임을 할 때보다 조금 더 넣었는데, 그게 오산이었다. 브로콜리가 보기와는 다르게 양파보다 간장을 더 쉽게 빨아들이는 몸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도 사각사각 씹히는 것이 샐러드나 샌드위치 고명으로는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이 브로콜리절임을 어디에 어떻게 곁들여 먹는지는 다음 이야기에……

레시피 (recipe)를 보고 싶으면 여기를 눌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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