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없이 우열을 가려보고자 하는 또 다른 시도가 있다. 오케스트라 연주자 오디션에서, 연주자와 심사자 사이에 장막을 치는 것이다. 심사자가, 장막 뒤에서 연주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남자인지 여자인지, 키가 큰지 작은지, 아무것도 모른 채 악기 소리에만 귀기울이게 하자는 의도다. 판단대상 외적 요소의 영향력을 막아보고자 시도되었다는 점에서, 장막 오디션은 콜라의 블라인드 테스트와 같은 맥락에 있다. 하지만 이 둘은 다른 결과를 남겼다.
프렌치 호른이라는 관악기가 있다. 모양새부터 묵직해 보이는 것이 힘이 좀 있어야 다룰 수 있어 보이는 악기다. 고정관념적으로 말해 남성의 악기인 셈이다. 그렇다고 여성 연주자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뉴욕 Metropolitan Orchestra 그리고 워싱턴 디시 National Symphony Orchestra에는 여성 프렌치 호른 연주자가 있다. 하지만 이들 여성 연주자들이 그 자리에 앉게 되기까지, 소수자 권리획득의 역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선구자의 투쟁이 있었다.
장막 오디션을 도입하면서, 전반적으로 오케스트라에 여성 연주자 수가 늘었고, 남성의 영역이라고 여겨져 왔던 프렌치 호른, 트롬본과 같은 관악기 부분에 여성 연주자가 하나 둘 늘기 시작했다고 한다. 보수적인 클래식 음악에 있어 혁명이라 불리울 정도의 변화를 불러일으킨 이 장막 오디션은, 사회적으로 뿐만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오케스트라에 질적 변화를 가져왔다는 게 전문가들의 결론이다.
콜라의 블라인드 테스트가 현실에서 외면을 당한 반면, 오케스트라 장막 오디션은 성공을 이루었다. 왜 같은 컨셉의 시도가 다른 결과를 가져왔을까? 청각도 다른 기관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기능을 수행하는데, 왜 장막 오디션의 결과는, 콜라가 소비자를 실망시킨 것과는 달리, 청중을 만족시켰을까? 가장 쉽게 생각해낼 수 있는 대답은, 콜라와 오케스트라 연주가 이를 즐기는 사람들과 작용하는 메키니즘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콜라는 소비자들과 일상적으로 친밀하게 만난다. 이에 비해, 오케스트라 연주를 감상하는 사람들은 연주자들과 거리를 두고 있다. 연주장에서 직접 보고 들으며 분위기를 느끼면서 듣거나, CD와 같은 매체를 통해서 귀로만 듣거나, 듣는자와 연주자와는 직접적 상호작용이 없다는 것이다. 이게 오케스트라 음악과 청중이 만나는 맥락인 것이다.
• Discussion Point:
콜라의 블라인드 테스트와 오케스트라의 장막 오디션은 인간의 인식과 편견에 대한 관계를 되짚어 보게 하는 사건들이다. 그리고 편견과 진실간의 관계에 대한 기존의 생각에 의문을 갖게 한다. 편견없는 인식이 무엇이고 편견이 낀 인식이 무엇인지, 과연 우리는 구별할 수 있을까? 시간을 두고 곰곰히 생각해 봐야 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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