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길에 흔히 볼 수 있는 푯말이다.
이유가 뭐든, 길이 아닌 곳을 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근래 산행을 할 때마다, 그런 사람을 적어도 한 번씩은 본다.
사실, 누가 뭐래도 어떤 길을 택하느냐는 개인에게 달려있다.
- 푯말을 무시하거나
- 상식을 따르거나
어떤 선택을 하든, 그에 따른 결과의 경우의 수는 무한하다.
초등학교 바른생활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삶은 그리 단순하지가 않다.
여기 있는 단 두 컷의 그림으로 이야기를 엮는다 해도, 이야기를 엮어가는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 * * * *
*덧붙이는 말
상식을 따라 살아온 삶이, 시각에 따라 실패자의 삶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면 왜 사람이 상식이나 사회적 약속을 배우고 지키며 사는 것일까? 남의 이목 때문에? 하지만 상식을 따르는 삶이 남보기에 결코 성공한 삶이 아닐 경우가 허다하다는 걸 모르지 않을 텐데? 아니면, 통제 메카니즘에 길들여져서?
남보기에 좋아 보이는 삶을 살고자 한다면, 우리는 교실에서 헛 것을 배웠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가식을 가르친 것이다. 얼마나 많은 선생님들이 진심으로 학생을 위해 도덕을 이야기하고, 사회적 약속을 지킬 것을 당부했을까? 정말 궁금하다. 단지 통제하기 쉽다는 이유만으로 하지 않았길 바라본다. 나 역시 상식과 사회적 약속을 귀하게 여기며 살아 왔고, 지금도 이에 어긋난 행동은 맘을 심히 불편하게 하지만, 남에게까지 사회적 약속을 지키며 살라고 할 명분을 대지 못하겠다.
인간의 삶은 그리 단순하지가 않다.
여기 있는 단 두 컷의 그림으로 이야기를 엮는다 해도, 이야기를 엮어가는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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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말
상식을 따라 살아온 삶이, 시각에 따라 실패자의 삶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면 왜 사람이 상식이나 사회적 약속을 배우고 지키며 사는 것일까? 남의 이목 때문에? 하지만 상식을 따르는 삶이 남보기에 결코 성공한 삶이 아닐 경우가 허다하다는 걸 모르지 않을 텐데? 아니면, 통제 메카니즘에 길들여져서?
남보기에 좋아 보이는 삶을 살고자 한다면, 우리는 교실에서 헛 것을 배웠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가식을 가르친 것이다. 얼마나 많은 선생님들이 진심으로 학생을 위해 도덕을 이야기하고, 사회적 약속을 지킬 것을 당부했을까? 정말 궁금하다. 단지 통제하기 쉽다는 이유만으로 하지 않았길 바라본다. 나 역시 상식과 사회적 약속을 귀하게 여기며 살아 왔고, 지금도 이에 어긋난 행동은 맘을 심히 불편하게 하지만, 남에게까지 사회적 약속을 지키며 살라고 할 명분을 대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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