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비가 그친 틈을 타 하이킹에 나섰다. 어제까지 내린 비 탓인지 산행객들이 주로 드나드는 주차장이 한가하다 못해 썰렁하게 비어 있었다. 겨울 아침이라 해도 여느때 같으면 반 이상은 차있었을 시각인데... 주차장을 벗어나 산 입구에 들어서니, 나뭇가지에 걸려있던 싸늘한 아침공기가 바람을 타고 온 몸으로 내려 앉았다. 적당히 기분좋은 차가움이었다. 이게 얼마만에 맛보는 싱그러움이던가?
내가 뜨거운 여름 태양을 무서워함에도 불구하고, Bay Area를 떠나지 못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그 중의 하나가 계절에 상관없이 자연을 느끼며 하이킹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2005년 늦은 봄, 남편과 주말에 바람도 쐬고 건강도 챙길 겸 Bay Area에 있는 트레일을 찾아 다니기 시작했다. Pescadero 근처의 Butano State park에 있는 트레일을 시작으로, 그해 여름이 가기 전까지 10여 군데의 공원을 찾아 다녔다. 시간이 가면서 우리가 선호하는 하이킹 코스가 생기기 시작했다. San Rancho Antonio Park, Castle Rock, Sosalito의 Marin Headlands, 그리고 Pacipica의 San Pedro Valley State Park에 있는 트레일로 우리의 산행은 좁혀져 갔다. 그해 봄과 여름 우리가 찾았던 공원의 트레일 거의 모두가 나름의 매력으로 우리에게 기억에 남을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우리가 위의 몇 개의 트레일로 선택의 범위를 좁힌 것은, 운전거리나 산행시간을 고려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이들이 산행의 즐거움을 더 해 주는 자연적 조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남편과 나의 주말 산행은 삶의 일부가 되어 갔다.
내가 원래 산행을 그렇게 좋아한 것은 아니다. 서울에 있을 때도 가끔씩 가곤 했지만, 지금처럼 즐기지는 못했다. 지금은 시간과 체력이 허락되는 한 언제든지 산행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지만 말이다. 왜? 그땐 시간이 항상 부족했다. 산행과 같이 많이 시간을 요구하는 여가활동에 투자할 여유가 없었다. 이상하게 서울에서는 산행을 가게 되면 반나절 이상이 소비되었던 것 같다. 어쩌다 시간 내서 가더라도, 사람에 치이다 돌아 오는 주말산행이 그리 즐겁지만은 않았던 것도 크게 작용했다. 이와 더불어 주차공간을 찾는 어려움도 한 몫 했다. 주차공간을 찾다가, 시작도 전에 진이 빠지곤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당시 서울에서의 산행은 여자 혼자 즐길 수 있는 여가활동이 아니었다. 사람들 인식이 그랬다. 뭐든지 혼자 하는 거에 익숙했고, 즐긴다고 생각하면서 지냈지만, 산행만큼은 다른 사람들의 인식이라는 핑계를 대고 내 자신을 묶어 놓았던 것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게 달라졌다. 일단 시간에 쫓기지 않고 있는데다가, 하루 2–3시간만 투자해도 하이킹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여건에 있다.
상황이 달라진 것도 있지만, 내가 하이킹을 즐길 수 있게 된 데에는 나의 인식의 변화가 가장 크게 작용했다. 뭔가 생산적인 결과를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면 시간을 내는데 인색했던 내 가치관에 변화가 생겼다. 무엇을 하든, 하는 것 자체를 즐길 수 있는 내가 된 것이다. 처음 산행을 시작하게 된 것도 건강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컸다. 하지만 남편과 산행을 하기 시작하면서 건강은 부차적으로 얻는 덤이 되었다. 남편과 같은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서로 나누는 것 자체만으로도 삶이 풍요로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아가면서, 산행의 맛을 알게 된 것이다. 지금은 혼자 산행을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른 아침의 상큼한 공기를 마시며 몸을 깨우고, 그동안 오고갔던 생각들이 정리되는 시간. 이 시간도 남편과 함께 하는 산행 못지 않게 의미있는 시간이다.
어제는 지난 주말에 남편과 새롭게 시도해 보았던 트레일을 찾았다. 아침 7시 20분. 비교적 이른 시간인데도 하이킹을 마치고 산을 내려 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 부부라는 이름으로 산다는 것
심리학자 가트만 (John Gottman)의 표현을 빌자면, 모든 결혼은 모스부호와 같이 두 사람만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패턴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특히 두 사람에게 의미있는 이야기를 할 때 보여지는 상호작용을 관찰해 보면, 그 부호가 바로 드러난다는 게 Gottman의 주장이다. 즉 Gottman에 따르면, 그 부호는 커플의 역학관계의 암호이며, 이 암호를 따라보면 커플관계의 지속성 여부까지 보인다고 한다.
* 부부라는 이름으로 산다는 것
심리학자 가트만 (John Gottman)의 표현을 빌자면, 모든 결혼은 모스부호와 같이 두 사람만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패턴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특히 두 사람에게 의미있는 이야기를 할 때 보여지는 상호작용을 관찰해 보면, 그 부호가 바로 드러난다는 게 Gottman의 주장이다. 즉 Gottman에 따르면, 그 부호는 커플의 역학관계의 암호이며, 이 암호를 따라보면 커플관계의 지속성 여부까지 보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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