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요즘은 서점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고 있지만, 책방이라는 말이 풍기는 몇 가지 어감 때문에 서점보다는 이 말을 즐겨 쓰는 편이다. ○○서점 혹은 ○○문고라는 이름으로 책 외에 다양한 문화상품도 팔기 시작하면서, 작은 규모로 책을 팔던 책방이 사라지고, 자연스럽게 책방이라는 말도 사람들 입에 덜 오르내리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이 서점이라는 말도 다른 말에 자리를 내어 줄 날이 멀지 않아 보인다.
유리창마다 붙어있는 '폐업세일' |
한국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지금 내가 사는 동네(Bay Area)에서는, 역설적이게도, 길모퉁이 책방을 잡아먹고 대형 몰(mall)에 들어섰던 기업형 서점 역시 그 길모퉁이 책방의 전철을 밟으며 사라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You’ve Got Mail’이라는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이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으리라 본다. 얼마전부터 기업형 서점 중 하나인 ‘BORDERS’ 가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했다. 내가 자주 들락거리던 BORDERS도 지금 폐업세일 중에 있다. 온라인 책방과 e-book의 활성화에, 미국의 어려운 경제적 상황까지 보태지면서 몇 년 전부터 예고되었던 일이기는 하지만, ‘store closing’ 간판 아래 뭐든 싸게 판다는 광고문구와 함께 쌓여있는 책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10여 년 전 사건 하나가 겹치면서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휴대전화나 호출기 등의 통신매체가 캠퍼스문화와는 거리감이 있던 시절, 학교 앞 책방은 학생들의 연락방 역할을 했다. 한번쯤, 책방에 꽂아진 메모를 확인해 보았거나, 책방이 마련해준 자리에 앉아 책을 보며 시간을 보내 봤던 사람이라면, 그 책방이 재정난으로 사라질 위기에 있다는 소식에 맘이 편치 않았을 것이다. 몇몇 사람들이 뜻을 모아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책방을 지켜보고자 했으나, 결국엔 그 책방마저 다른 업종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Seattle's Best Coffee 파라솔과 의자들이 있던 자리 |
BORDERS는, 옛날 책방과는 다르지만, 그동안 어떤 이유로든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편안한 휴식 공간으로 존재해 왔다. 나와 남편도 이곳을 내집 서재처럼 편안하게 들락거렸다. 사실을 말하자면, 책을 사러가는 날보다는, 사고 싶은 책을 미리 훑어보거나, BORDERS가 운영하는 커피점 (Seattle’s Best Coffee) 파라솔 아래서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 날이 더 많았다. 이런 날이 곧 올 줄 알면서도, 급하지 않은 이상 값이 싸다는 이유로 온라인 책방을 더 많이 이용했다. 평범한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게 자연스러운 거라고 애써 변명해보지만, 폐업정리 문구에 죄책감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세상은, 다는 아니지만, 주로 인간의 이기심을 바탕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자본의 힘을 자랑했던 대형서점이 그 자본의 논리에 따라 사라진다고 안타까워 할 일은 아니다. 오프라인의 책방문화가 사라지는 것이 섭섭하긴 하지만, 사실 나도 이보다는 내가 즐겨 찾던 놀이방을 빼앗긴 서운함을 더 강하게 느끼고 있다. 특히 Seattle’s Best Coffee가 제공하던 야외 공간은 어디에서나 쉽게 향유할 수 없는 곳이었으니 말이다. 선반과 선반 사이를 돌면서 책을 고르고, 책장을 넘겨 가며 책읽는 재미를 맛보기 위해선, 좀더 투자했어야 했다. 현실은 무임승차를 오래 봐주지 않는다는 걸 모른 척 했던 대가로 더 많은 걸 치루게 되겠지.
*덧붙이는 이야기:
옛 생각도 나고 정확한 정보도 얻을 겸 이곳저곳 기웃거려 보니, 그 책방이 밀려난 뒤, 같은 이름의 헌책방이 들어섰다가 다시 재정난으로 문들 닫았다고 하는데, 이곳에서는 정확한 사실을 알 길이 없으니...
*덧붙이는 이야기:
옛 생각도 나고 정확한 정보도 얻을 겸 이곳저곳 기웃거려 보니, 그 책방이 밀려난 뒤, 같은 이름의 헌책방이 들어섰다가 다시 재정난으로 문들 닫았다고 하는데, 이곳에서는 정확한 사실을 알 길이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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