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14일 목요일

Mirror Neuron

나는 지금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

        Mirror neuron 발견
문득 바라본 친구나 가족, 가끔은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의 얼굴에서, 사람이 느끼고 생각하고 있는지 감이 때가 있다. 흔히 직감 혹은 육감의 형태로 다가오는, 근거를 없는 앎의 근원은 뭘까? 이런 직감 혹은 육감으로 다가서는 다른 사람의 감정과 생각에 대한 이해는 의외로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중의 하나가, 인간은 그렇게 다른 사람을 이해할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로 진화해 왔다고 말해주는 세포, mirror neuron의 발견과 의미다.

        흉내는 다른 개체를 이해하는 걸음
원숭이(monkey) 다른 개체-사람이나 다른 동물의 동작을 흉내 내거나 바라볼 , fMRI 보면 유난히 왕성하게 활동하는 부위(F5: mirror neuron) 있음을, 흉내와 깊은 인연이 있는 원숭이 함께 실험을 하던 연구팀이 처음으로 발견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발견에 이어, 원숭이의 뇌에서 발견된 mirror neuron 같은 역할을 하는 neuron 인간의 뇌에도 있음을 알아냈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인간에게서 발견된 뇌세포는 원숭이에게는 없는, 인간의 언어를 담당하는 Broca’s area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언어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Broca’s area 언어능력을 담당하는 부위로 알려진, 좌측 전두엽(frontal lobe) 내에 .  mirror neuron의 Broca’s area와의 관련성을 놓고 보면, 간단히 말해, 인간은 다른 이간을 이해할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라는 것이고, 이게 언어라는 매체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어느 구절 하나 새로운 것이 없어 보이는 결론이다. 하지만 언어가 관찰과 모방에서 시작되었고,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 진화해 왔다는 가설을 뒷받침할 있는 과학적 근거를 찾았다는 것 외에, 인간사회의 생성과 진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온 언어의 습득에 대한 연구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mirror neuron의 Broca’s area와의 연관은 충분히 흥미로운 발견이다.

        언어습득 능력과 Mirror Neuron
언어습득이론은 언어의 발생과 습득과정에 대한 확실한 물적 증거가 없는 가운데, 1950년대 후반에 시작된  Noam Chomsky vs. B. F. Skinner 공방으로, Skinner 학습이론(conditioning)만으로는 어린아이들의 빠르고 광대한 언어습득 과정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한동안 Chomsky ‘Universal Grammar’ 이론이 언어학자들의 중심에 있어 왔지만, 여전히 어린아이들의 빠른 언어습득 과정을  부러지게 설명할  있는 이론이 없다. mirror neuron 발견은, Chomsky 생래적 언어습득이론에 의문점을 제시하면서 언어습득이론에 새로운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 .

Discussion Point:
빠르게 변하는 사회에서 진리란 공동체의 의견일치인 지식일 뿐인가? 

  

2011년 6월 29일 수요일

What makes us who we are ③–Pleasure Circuit

스트레스는 왜 특정 행위를 불러오며, 그 행위는 왜 반복되는가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뭔가 특별히 당기는 것이 있다면?
특정 상황에 놓였을 때, 특정 음식을 탐하거나, 특정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자면,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사탕 혹은 초콜릿 같은 음식이나 기름진 음식을 찾아 먹는 경우가 그것이다. 이런 패턴적 현상이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리 문제 될 것이 없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습관화가 되면서, 몸무게의 증가와 같은 부작용이 뒤따르게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가끔은 중독이라는 뜻하지 않은 상태에 이르는 수도 있다. 진단학적으로 약물중독 혹은 섹스중독 등을 말할 때는, 중독에 대한 엄밀한 정의와 엄격한 적용이 필요하지만, 중독이란, 간단히 말해, 쾌감 혹은 편안함을 주는 행위의 반복이 적정수준을 넘어, 자연스럽게 작용하던 몸의 메카니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되면서, 강박적으로 그런 행위를 쫓게 되는 상태 있다중독에 이르는 동안, 뭔가를 하면서 얻었던 희열, 쾌감이나 기분전환은 사라져버리고, 하지 않으면 참을 없는 불안과 불쾌감만 남게 된다 (withdraw).  

     왜 특정 음식이나 물질, 혹은 행위에 중독되는가?
여러 가설을 들어 중독으로 가는 길을 설명할 있겠지만, neuroscience 시각의  가설에서 보자면 이렇다. 인간의 뇌에는 medial forebrain pleasure circuit이라는, 이름이 말하는 대로, 중간 앞부분에 위치한, 사람이 쾌감이나 환희를 느낄 반응을 보이는 부분이 있다. 쾌감이나 기분전환을 가져다주는 행위들,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다든지, 운동을 한다거나, 사랑을 나누게 되면, 이 pleasure circuit에서 dopamine이라는 neurotransmitter 분비되고, 이에 따라 사람들은 적당히 기분 좋은 상태가 된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유전적 요인에서든 습관성으로 인한 것이든, 보통 이상의 자극이 있어야만 부위에서 dopamine 분비되어 원하는 만큼의 쾌감을 느낄 있게 된다. 따라서, 부위가 어떤 이유에서든 고장이나, 자연스럽게 dopamine 분비하지 않게 되면, 희열이나 쾌감을 주었던 행위의 강도나 빈도를 서서히 높이게 된다. 과정에서 먹는 음식이나 약물, 혹은 행위의 성격에 따라  중독의 길로 가는 경우가 생긴다-약물에 따라 관계되는 뇌의 화학물질인 neurotransmitter의 종류는 달라지지만, 습관적 약물사용으로 인해 뇌의 자생적 화학물질의 분비과정이 방해되면서 중독에 이른다는 점에서는 같다. neuroscientist, David Linden 따르면, medial forebrain pleasure circuit 이상적 작동에는 유전적 요인이 가장 크게 작용한다고 한다 (The Compass of Pleasure, 2011). 예를 들어, 이 부위가 보통사람보다 둔한 상태로 태어난 사람의 경우, 중독적 행위에 빠질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유전적 위험을 보유하지 않은 사람의 경우에도 스트레스에 많이 노출될 경우 중독의 위험은 커진다 (Linden).  

      스트레스로 인한 Pleasure Circuit 오작동
다행히 모든 즐거움을 주는 행위 혹은 물질이 중독현상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독성이 강한 것으로 알려진 알코올, 니코틴이나 코카인 같은 향정신성 물질만이 아니라, 우리가 흔히 먹는 음식에 들어가는 성분의 화학작용이 중독을 가져오기도 한다. 특히 스트레스를 대처하는 과정에서, 음식이나 기름진 음식을 찾아 먹는 사람이, 이를 조절하지 않을 경우몸무게의 증가와 같은 부작용을 경험하면서 중독에 이르기도 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왜 특정 음식을 찾아 먹고 살이 찌는지 과학적으로 설명 셈이다. 참고로, 스트레스 호르몬이 과다 분비되면 체지방이 허리와 부위에 쌓인다는 연구도 있다.

문제는 중독성이 강한 음식 혹은 행위와 스트레스와의 연결고리를 끊는 쉽지 않다는 있다. 유전적으로 medial forebrain pleasure circuit 이상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쉽지는 않지만 해결책은 있다. 우선 스트레스를 가능한 줄이는 것이. 어쩔 없이 스트레스에 자주 노출되는 경우라 해도, 즐길 수 있는 활동을 찾아 스트레스로부터의 탈출을 꾀하라고 린든(Linden) 조언한다. 더 나이가 즐길거리를 다양화시키라고 한다. 오레곤 대학(University of Oregon)의 한 실험에 따르면, 기부와 같은 선행행위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마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medial forebrain pleasure circuit 자극한다고 한다 (Linden, 2011). Runner’s high라는 말이 있듯이 운동을 통해 쾌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탐험을 하면서 희열을 맛보는 사람도 있다. pleasure circuit을 자극해서 쾌감과 희열을 얻는 통로는 사람마다 다양하다. 이렇게 pleasure circuit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한 사람의 또 다른 속성이 만들어진다. 

Discussion Point: 자유의지와 선택
해결해야 할 일은 산같이 쌓여있고 삶의 의미가 꼬리를 감추려 할 때, 맥주나 스낵을 끌어안고 TV를 보거나 인터넷을 뒤적거릴 것이냐, 술을 진탕 마실 것이냐, 운동화를 매여 신고 밖으로 나설 것이냐, 아니면 자원봉사와 같은 사회활동에 참여해 볼 것이냐? 자유의지(free will) 문제가 다시 고개를 내미는 순간이다.
생물학적 요인이 인간의 행동역학 메카니즘을 작동시키는 중요열쇠라는 근래의 neurobiology 연구결과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였을 때, 선택에 따라 후속적으로 나타나는 결과에 대해, 개인은 어느정도 책임을 지는가? 이에 대한 의견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인다.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행동한다는 것은 환상이라고 보는 학자도 있고, 자유의지는 생물학적으로 인간에 내재된 능력이라고 보는 학자도 있다. 
자유의지의 존재여부를 떠나, 행동에는 책임이 뒤따른다는 점에서는 의견을 같이 할 수도 있지만, 시각에 따라 책임을 묻는 이유와 그 책임의 정도에 대한 이해가 달라지기 때문에, 생물학적 메카니즘의 작동에 따른 행위가 가져오는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 또한 달라진다. 구체적인 예를 하나 들자면, 유전적으로 합리적 사고를 할 수 없는 질병을 갖고 태어난 사람이 법을 어겼을 경우, 그 사람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시각에 따라 다른 해결책이 제시되기도 한다.  
논리적인 철학적 사고와 과학적 합리성을 바탕으로 일상의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서는 섣불리 말할 수 없는 문제다. 
자유의지는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주제로, 석학들의 열띤 토론으로도 해결을 못 본 문제인 만큼, 인간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언제든지 논쟁의 중심에 설 수 있는 주제가 아닐지.

2011년 5월 31일 화요일

What makes us who we are ②–Frontal Lobes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설명해 주는 한 factor, 의사결정과정
                                                                                                            그룹성향이 있다면, 그것은 왜 생기는가?
상황과 정도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지만, 대체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풍기는 말, 개성개개인이 똑같아서 다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예측할 있다면, 세상이 재미없어질 것이라는 말이 흔하게 쓰이는 요즘이다.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개성 혹은 개인차가 너무 두드러져서 말이 통하지 않게 되면, 갈등이 시작되고 반목을 만드는 원천이 되기도 한다.

개인차가 논란을 일으키는 분야는 다양하나, 특히 편견을 만들어내기 십상인 집단적 정형화를 이끌어 내며 이야기를 펴나갈 때, 논란은 끝을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자면, '여자는 공간지각 능력이 남자에 비해 떨어진다'와 같은 것이 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말의 옳고 그름이나 차이가 있고 없음을 따지자는 게 아니다. 차이가 있다면, 차이가 있으며, 차이가 어떻게 현실에 반영되며, 그 반영된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것이다. 차이가 어디에서 오는지에 대해서도 다양한 견해가 존재한다. 인간의 정신작용과 행동에 대한 최근 연구를 뒤적여 보면, neuroscience 시각에서 바라보는, 개개인의 특성을 뇌의 구조 화학작용의 차이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시도가 눈에 띈다. 중에 하나, 인간의 특성 개인차를 설명하는데 frontal lobes 중점적으로 다루는 골드먼(Elkhonon Goldberg, The Executive Brain) 따르면, 남성과 여성이 때때로 서로 이해하기 힘든 행태를 보이는 것은, 여성과 남성은 같은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다른 의사결정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의사결정과정에서 보이는 남녀차이
골드먼을 비롯하여, neuroscience 시각에서 개인차에 접근하는 연구에 따르면, 남성과 여성은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이들 뇌에 작용하는 화학물질의 작용메커니즘도 다르다. 여성과 남성을 집단으로 구분해서 실험을 해보면, 각기 같은 상황에서 비슷한 유형의 의사결정과정을 거치는 집단적 유사성을 보인다. 그 한 예로 골드먼의 실험(actor-centered decision making 간단히 말하면, 행위자의 우선순위에 따라 어떻게 의사결정을 하는가를 알아보는 실험)에 의하면, 여성은 벌어진 상황이 어떻든 상황적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일반적으로 자신에게 익숙한 패턴에 따라 의사결정을 내리는 경향이 있고, 남성은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의사결정을 내리는 성향이 있다고 한다. 사안에 따라 나은 결과를 가져오는 의상결정유형이 달라지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어떤 유형이 좋다라고 말할 없다. 실험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여성과 남성이 집단적으로 정형화할 있을 정도로 구별되는 의사결정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차이는, 의사결정에 중추적 역할을 하는 frontal lobes 구조적 차이와 화학작용의 차이에서 온다는 것이다. 골드먼은 말한다. '차이가 있다는 것이 객관적 사실이라면, 이에 대한 가치판단보다는 그 사실을 현실을 이해하는데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Discussion Point: fact를 받아들이는 자세
과학적 관찰과 실험에 의해 fact로 알려진 사항은 다른 fact에 의해 대체될 때까지는 사실이라 받아들이는 게 보통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이다. 그 사실이 다소 불편할지라도 말이다.  

2011년 4월 21일 목요일

추억이 되어가는 책방, BORDERS


책방. 요즘은 서점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고 있지만, 책방이라는 말이 풍기는  가지 어감 때문에 서점보다는 말을 즐겨 쓰는 편이다. ○○서점 혹은 ○○문고라는 이름으로 책 외에 다양한 문화상품도 팔기 시작하면서, 작은 규모로 책을 팔던 책방이 사라지고, 자연스럽게 책방이라는 말도 사람들 입에 덜 오르내리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이 서점이라는 말도 다른 말에 자리를 내어 줄 날이 멀지 않아 보인다. 

유리창마다 붙어있는 '폐업세일' 
한국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지금 내가 사는 동네(Bay Area)에서는, 역설적이게도, 길모퉁이 책방을 잡아먹고 대형 몰(mall)에 들어섰던 기업형 서점 역시 그 길모퉁이 책방의 전철을 밟으며 사라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You’ve Got Mail’이라는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이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으리라 본다. 얼마전부터 기업형 서점 중 하나인 ‘BORDERS’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했. 내가 자주 들락거리던 BORDERS도 지금 폐업세일 중에 있. 온라인 책방과 e-book의 활성화에, 미국의 어려운 경제적 상황까지 보태지면서  전부터 예고되었던 일이기는 하지만, ‘store closing’  간판 아래 뭐든 싸게 판다는 광고문구와 함께 쌓여있는 책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10여 년 전 사건 하나가 겹치면서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휴대전화나 호출기 등의 통신매체가 캠퍼스문화와는 거리감이 있던 시절, 학교 앞 책방은 학생들의 연락방 역할을 했다. 한번쯤, 책방에 꽂아진 메모를 확인해 보았거나, 책방이 마련해준 자리에 앉아 책을 보며 시간을 보내 봤던 사람이라면, 그 책방이 재정난으로 사라질 위기에 있다는 소식에 맘이 편치 않았을 것이다. 몇몇 사람들이 뜻을 모아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책방을 지켜보고자 했으나, 결국엔 그 책방마저 다른 업종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Seattle's Best Coffee
 파라솔과 의자들이 있던 자리
BORDERS, 옛날 책방과는 다르지만, 그동안 어떤 이유로든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편안한 휴식 공간으로 존재해 왔다. 나와 남편도 이곳을 내집 서재처럼 편안하게 들락거렸다. 사실을 말하자면, 책 사러가는 날보다는, 사고 싶은 책을 미리 훑어보거나BORDERS가 운영하는 커피점 (Seattle’s Best Coffee) 파라솔 아래서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 날이 많았다. 이런 날이 곧 알면서도, 급하지 않은 이상 값이 싸다는 이유로 온라인 책방을 더 많이 이용했다. 평범한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게 자연스러운 거라고 애써 변명해보지만, 폐업정리 문구에 죄책감이 드는 어쩔 수가 없다

세상은, 다는 아니지만, 주로 인간의 이기심을 바탕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자본의 힘을 자랑했던 대형서점이 그 자본의 논리에 따라 사라진다고 안타까워  일은 아니다. 오프라인의 책방문화가 사라지는 것이 섭섭하긴 하지만, 사실 나도 이보다는 내가 즐겨 찾던 놀이방을 빼앗긴 서운함을 강하게 느끼고 있. 특히 Seattle’s  Best Coffee 제공하던 야외 공간은 어디에서나 쉽게 향유할  없는 곳이었으니 말이다. 선반과 선반 사이를 돌면서 책을 고르고, 책장을 넘겨 가며 책읽는 재미를 맛보기 위해선, 좀더 투자했어야 했다. 현실은 무임승차를 오래 봐주지 않는다는 걸 모른 척 했던 대가로 더 많은 걸 치루게 되겠지.   


*덧붙이는 이야기: 
옛 생각도 나고 정확한 정보도 얻을 겸 이곳저곳 기웃거려 보니, 그 책방이 밀려난 뒤, 같은 이름의 헌책방이 들어섰다가 다시 재정난으로 문들 닫았다고 하는데, 이곳에서는 정확한 사실을 알 길이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