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인상이 인간관계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에 이의를 달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물론, 첫 인상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게 편견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경고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경고가 첫 인상이 갖는 영향력을 파괴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렇다면 첫 인상은 얼마나 정확할까? 즉, 직관 혹은 육감을 근거로 하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이해에 얼마나 도움을 줄까? 예를 들어, 자동차 판매장에 막 들어선 손님과 판매원의 눈이 마주쳤을 때를 생각해 보자. 손님이 들어 서는 순간부터, 자동차 판매원은 알게 모르게 손님의 표정이나 행동을 근거로 이런저런 판매전략을 짜면서 손님을 맞는다고 한다–정말 자동차를 살 의도로 매장을 찾은 것인지, 어느정도의 구매력을 가지고 있는지, 혹은 흥정에 얼마나 강한지 등. 인사를 나누며 몇 마디 주고받는 짧은 시간 안에 파악한 정보를 바탕으로 손님을 대하는 전략을 각기 다르게 짜는 판매원의 판매실적은 과연 어떨까?
인간과 세상을 이해하는 틀은 다양하다. 최근 neuroscience 분야에서 쌓아온 연구결과를 기반으로 인간의 정신과 행동을 뇌작용의 결과로 이해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이게 아주 새로운 시각은 아니지만, fMRI나 PET 등 첨단기계의 힘을 빌려 한동안 일부에 한정되어 있던 뇌의 구조, 기능과 인간의 정신, 행동간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를 내놓고 있다는 점에서, 그 지지 기반을 넓혀가고 있다. 덕분에 나역시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내 자신과 세상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는 재미를 보고 있다. 한 심리학 교수의 추천으로 들락거리기 시작한, 한 brainscience podcast가 그 재미의 중심에 있다. Ginger Campbell이 진행하는 이 podcast는 매 에피소드마다 누구나 뇌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관심을 갖기에 충분한 주제를 다루고있는데, 몇몇 에피소드는 단순한 재미를 너머, 길 잃은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와도 같이 인간의 본질에 대한 내 오랜 궁금증을 풀어주고 있다. 가끔은 더한 갈증을 불러일으켜, 이곳저곳을 파헤치며 다니게 하기도 한다.
그 중의 하나가, 흔히 직관 혹은 육감 (intuition or gut feeling)이라 말해지기도 하는 인간의 무의식적인 인지능력 (unconscious cognition)에 관한 것이다–고미술 전문가가 첫 눈에 그리스 조각품의 진위성을 알아보는 능력, 혹은 부부가 일상적으로 나누는 대화나 태도를 보면서 그들 관계의 역학, 심지어는 그 지속성여부를 파악할 수 있는 심리학자의 판단력 등. 귀가 솔깃해지기에 충분한 주제다. 나역시 이와 비슷한 에피소드들을 종종 경험하곤 한다. 하지만,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과학적 근거없이 주장하는 fallible myth로 치부되는 것 같아 묻어두고만 있었다. 하지만 인간 뇌에 대한 연구가 심도있게 진행되면서, 직관 혹은 육감이라 불리는 현상은 unconscious cognition 이라는 뇌 활동의 일부라는 것을 뒷받침하는 연구들이 구체적인 증거들을 속속 내놓고 있다.
Gerd Gigerenzer는 Gut Feelings라는 책에서, 저자의 표현을 빌면, the intelligence of the unconscious라고 하는, 이 무의식적 인지능력을 근거있는 인간의 능력으로 받아들인다. Gigerenzer는 이를 gut feeling이라 부르면서, 이 gut feeling에서 나오는 순간적인 판단이, 경우에 따라서는 오랜 생각 끝에 내리는 논리적인 결론보다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고 주장하며, 이를 과소평가하거나 부정하려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한다. 인간의 무의식적 인지능력 (unconscious cognition)을 실질적으로 보는 또 다른 한 사람, Malcolm Gladwell은 Blink: The Power of Thinking without Thinking이라는 책에서, 구체적인 사건이나 일화 혹은 실험을 예로 들어가면서 unconscious cognition에 대한 이야기를 알기 쉽게 풀어낸다. 이 두 저자에 따르면, unconscious cognition 혹은 unconscious intelligence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 능력으로,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간단히 말하자면, 두 저자 모두,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벌어지는 뇌의 활동의 결과물인 snap decision making의 경쟁력을 높이 산다. 물론 snap decision making이 오류를 불러일으킬 수 있음도 인정한다. 하지만 무의식적 인지능력이 인간의 본질적 속성인 만큼, 많은 경험과 연습으로 오류를 줄이고, 그 능력을 키워 인간과 세상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다고 한다.
앞서 예를 든 자동차 판매원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자동차 판매에서 월등한 실적을 거둔 적이 있는, 미국 뉴저지의 한 니싼 자동차 판매소의 관리자에 따르면, 매장에 들어오는 손님에 대한 첫 인상에 기반한 판단과는 다르게 손님과의 만남이 끝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의 판매실적의 비법을 묻는 질문에 ‘나는 매장에 들어오는 사람 모두를 똑같이 대한다. 단지 각 손님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그에 맞게 손님과 시간을 보낸다’라고 했다. 그는 unconscious cognition의 오류가능성을 그의 방식대로 극복한 것이다.
종종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불러일으키며, 한동안 과학의 저 너머에 있던 직관 혹은 육감이,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인간 뇌작용의 결과라는 것. 이 사실을 알았을 때, 내게 이제까지 일어났던 설명할 수 없었던 일들이 소 뒷걸음치다 쥐 밟은 격의 요행 혹은 우연이 아니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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